인천경찰의 문화활동
류종호(인천남부서. 인천문인협회 이사. 경위)
며칠 전, 예총 사무실에 갔다가 2층 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한 적이 있다. 연말 불우이웃돕기 공연 리허설이라는 전언이었다. 빅밴드 연주에 노래하는 싱어의 열창이 문화회관 마당까지 울려 퍼졌다. 이은하의 곡 「겨울장미」였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은하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을 연상케 하는 싱어의 톤 칼라가 무척 인상 깊었다.
작년 말,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인천예총 송년의 밤 행사에 참석한 송영길 인천시장이 문화예술 방면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직접 배우로 분하여 5개 구청장과 함께 불우이웃돕기 연극 무대에 오른 걸로 알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과거 인천시정에서 문화예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빈약했던 시절에 비하면 말이다.
의식의 변화는 비단 특정인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경찰 조직에도 문화활동에 관한 변화가 뚜렷이 일고 있다. 과거의 인식처럼 경찰 조직이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인천의 경우 지방청을 비롯하여 10개 경찰서(공항경찰대 포함)에 각종 서클이 개설되고 여기에 가입한 회원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일찍부터 서예에 재능을 발휘하여 구양순체(歐陽詢體)로 문화대전 입상 경력이 있는 김일환 경위(남부서)를 비롯하여 여행사진을 토대로 책을 펴낸 이주용 경위(지방청) 같은 이도 있다. 젊은 시절부터 문인으로 활동하며 근자에 두 번째 시집「살 만한 세상」을 발간한 중부서 이병춘 경무과장도 경찰조직에선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란(蘭)을 좋아하여 따로 인천공무원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줄 안다.
동해지방해양경찰청에 근무하는 박경순 경정도 오랜 세월 인천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해온 시인이다. 박경순 시인은 필자와 함께 내항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인천해양경찰청에 근무할 당시 관현악단을 초빙하여 청사에서 연주회를 여는 등 경찰행정발전에 기여한 공이 탁월하다. 관현악단이 경찰 청사에서 연주회를 갖는 문제를 예사롭게 인식할 수 있으나 이는 오래된 구습을 깨는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해도 손색이 없다. 박경순 시인은 관현악단의 연주와 함께 내항문학회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을 초빙하여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아마 언젠가 그녀가 인천으로 복귀하면 다시금 인천해양경찰청사 내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리라 믿는다.
박경순 시인이 근무하는 함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시인들
(왼쪽부터 류제희 시인, 박경순 시인, 정승렬 인천문협 회장)
사람들이 건강과 장수문제에 고민하면서 각종 레크리에이션 활동에 주력하게 되었다. 인터넷 문화가 대중의 생활과 접목되면서 이젠 일반적인 현상으로 인식할 정도가 됐다. 휴일이면 어지간한 산은 등산객으로 만원이다. 등산객뿐이 아니다. 산악자전거를 전문으로 타는 MTB 회원들도 있다. 양평 유명산 정상엔 페러글라이딩[para gliding : 장방형이나 부메랑 모양을 한 낙하산(parachute)으로 창공을 나는 스포츠]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바다에서는 잠수를 목적으로 하는 스킨스쿠버들의 활동이 이어진다. 단순히 잠수 자체를 즐기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환경정화 차원의 봉사활동을 캐치플레이어로 내건 단체도 많다. 바다물속 깊이 들어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각종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것이다.
최근 들어 경찰의 문화생활을 꼽으라면 악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악기에 대한 관심은 경찰조직만의 흐름이 아니다. 어지간한 도시에는 몇 군데씩 악기 동호회가 있다. 일렉기타와 베이스, 건반과 드럼이 참가하는 록밴드 동호회부터 색소폰 혹은 트럼펫 동호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천경찰을 들여다보면 지방청 소속 경찰관들로 구성된 ‘폴리스라인’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일찍부터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5년 10월 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자선공연을 열었을 때 ‘폴리스라인’의 서포를 받아 필자가 태너색소폰으로 「my way」와 「빗속의 여인」을 연주한 적이 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로부터 받은 뜨거운 찬사와 격려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특이한 건 드럼 스틱을 잡았던 멤버가 경찰대 출신의 여경 이지은 경위였다는 점이다. 젊은 여성이 현란한 동작으로 빠른 비트를 컨트롤하는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당시 음향은 구월동에서 인천클라리넷앙상블 단장을 맡고 있던 이일하(50세, 필리핀 거주) 씨가 맡아 수고해주셨다. 이일하 씨는 나와 관악기 동호회 멤버이기도 했다. 그런 관계로 평소 각별히 지냈다.
공연을 앞두고 ‘폴리스라인’의 리허설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우선 그들은 연습실이 없어 곤혹스런 상황이었다. 각기 특출한 재능을 가진 실력이었으나 어쨌든 호흡을 맞출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 인천문화예술회관 건너편에서 관악기 동호회를 운영했던 유병헌(52세) 씨를 찾아가 어렵게 사정하여 한 달간 시설물을 빌려 쓰는 데에 협조를 받았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폴리스라인’ 멤버들은 틈틈이 짬을 내어 지하 공간에 모여 연습에 매진하였다. 일렉기타를 맡았던 정영제 경사와 베이스 기타의 유성철 경장의 실력이 프로급이었다. 사실 ‘폴리스라인’의 활동은 그 이전부터 두드러졌다. 2004. 10월 자선음악회를 -인천지방경찰청 대강당- 시작으로 그 해에만 세 번의 공연을 가졌고, 2007년 5월엔 경기도 세계도자기축제 직장인 밴드 경진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다시 2007년 6월 인천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결식아동돕기 아름다운 노래’ 공연을 가졌고, 9월 8일엔 홍대 롤링 홀에서 열린 컴퍼니밴드 연합공연에 참가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2008년 11월 1일 제2회 머이투데이 직장인 밴드대회 본선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12월 초엔 부평구청 7층 대강당에서 사랑의 음악회 자선 공연을 열었다.
공연 중인 '폴리스라인'
아무튼 ‘폴리스라인’의 그칠 줄 모르는 열정은 경찰조직에 대한 외부의 경직된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기여한 공이 크다 하겠다. 이들은 최근에도 인천시민을 위한 공연을 가진 걸로 안다. 문화활동 측면에서 보면 멤버마다 전문성을 갖춘 프로라 해도 손색이 없다.
록밴드와는 개념이 다르지만 색소폰이나 트럼펫을 배우려는 직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색소폰이 대중적인 악기가 되었다. 색소폰의 주법으로 강조되는 복식호흡이 건강에 좋다는 어느 의사의 TV 강의가 있고부터 색소폰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어려서부터 색소폰을 해온 나로서는 제철 만난 메뚜기나 다름없는 몸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천색소폰 동호인 모임 ‘인천소리고을’을 통해 프로급 연주자들과 활동했다. 멤버의 일원으로 여러 연주회에 동참했다. 회원 중엔 방송국 관현악단 출신부터 평생토록 직업으로 색소폰을 연주해온 이도 있었다. 그들에게 색소폰은 혼을 사르는 도구나 다름없었다. 필자는 경찰관 신분으로 제3대 회장직을 맡아 공연이나 연주회 장소 섭외 등을 책임지고 뛰었다. 연안부두 야외무대를 비롯하여 중구 한중문화관, 남구 시민회관공원, 문학경기장 야외무대, 남동구 인천대공원 야외무대,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 등지에서 여러 번 연주회를 가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주회 때 녹음한 mp3 파일을 직장 내부망 사이트에 올리는 일도 있지 않았다. 처음엔 막연히 감상하는 데에 그쳤던 직원들이 하나둘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와 색소폰 입문 과정이나 악기 구입 요령 등에 대해 도움을 청했다. 여기서 잠깐 색소폰과 트럼펫의 구조와 원리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일단 색소폰 마우스피스는 크게 하드러버와 메탈로 구별되지만 종류와 호수를 세부적으로 논거하면 복잡 다양하다. 동일한 오프닝이라 해도 리드의 호수에 따라 컨트롤 난이도가 달라진다. 비싼 피스가 좋은 피스인가 하는 논의는 보류하고 일단 좋은 피스들을 보면 하나같이 사이드레일(side rail)이 가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더러 빈티지 피스에서도 목격되는 이런 현상은 근래 출시되는 고가 피스를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색소폰이 마우스피스(mouthpiece)에 리가추어(ligature)로 리드(leed)를 세팅해 소리를 내는 ‘리드악기’라면 트럼펫은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떨려 공명(共鳴, resonance)에 도달하는 ‘피스악기’이다. 어느 악기이든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비로소 성취감에 도달할 수 있다.
'폴리스라인' 공연에 태너색소폰 주자로 참가한 필자
색소폰이든 트럼펫이든 과정이 녹록치 않다. 이런 점을 각오하면서도 사람들은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색소폰을 배우려는 직원들이 늘어나자 아예 관악기 연습실을 차리는 경찰서가 생겨났다. 신두호 전(前)인천지방경찰청장 스스로 알토색소폰을 배우면서 청사 내에 관악기 연습실을 차릴 것을 지시하여 색소폰을 배우려는 직원들이 상용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업무 중 짬을 내어 혹은 퇴근 후에 지방청 연습실을 통해 악기 연습을 하는 직원들이 꽤 된다고 들었다. 지방청장의 배려에 고무되어 일선 경찰서에서도 일약 변화를 꾀하는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남부경찰서를 들 수 있다. 조정필 서장 부임 후 본관 4층 대강당 옆 홀을 동호회 휴게실로 전용하면서 일부 관악기 연습실로 꾸민 것이다. 외부로 음이 새어나갈 것에 대비하여 사면을 흡음재(吸音材)로 마감하고 바닥에 고무재질의 매트리스를 깔았다. 반주기는 E-800 신형을 구입해 설치했다. 이런 환경에 서장이 직접 색소폰을 목에 걸고 연습에 임하기 시작했다. 평소 막연한 환상에 그쳤던 직원들이 연습실을 찾아오면서 남부경찰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다. 경찰서 본관 한 켠에서 은은히 색소폰 소리를 듣는 마음은 어떨까? 더러 신선한 충격을 받는 사람도 있으리라 믿는다.
채찍만을 가하는 마부는 준마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직장에서도 업무와 휴식이 적절해야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남부경찰서의 경우 작년도 관서 종합치안성과에서 인천지방청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았다. 필자가 소속된 부서는 팀원 전원이 영예의 S등급을 받았다. 경찰서가 S등급을 받으려면 700여명의 직원들이 연중 단 한 건의 자체사고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첫째 조건으로 꼽는다. 이런 결과는 일에만 집착하지 않고 적당한 휴식과 개인의 취미생활이 보장된 직장 분위기와 직결되지 않을까 판단된다. 휴식을 취하면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몇 년의 주기를 놓고 보면 경찰조직이 가장 획기적인 변모를 거듭했다 해도 과언 아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동부서 형사과에 근무하던 시절, 크로버 4벌식 타자기와 2벌식 전동타자기로 피의자 신문조서 혹은 각종 서류를 작성하고 기안할 때에 사비를 털어 컴퓨터를 들여놓았다. 당시 경무계에 한 대 있었으니 내가 경찰서에서 두 번째로 컴퓨터를 설치한 셈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키보드로 문서를 작성하자 일부 선배들이 일을 얼마나 하겠다고 컴퓨터를 들여놓느냐면서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그때 중부서 형사과엔 다섯 대의 컴퓨터가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도 편협의 사고를 버리지 않던 선배들은 레이저 프린트가 뽑아내는 활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형사과의 중요문서와 보고서를 전담해 작성하는 몸이 됐다. 얼마 안 돼 관리계에 새로운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필자의 역할이 끝났지만 시대는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경찰의 문화생활은 꼭 음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남동서와 삼산서엔 문학 모임을 통해 시와 수필, 소설 장르를 공부하는 회원들도 있다. 그만큼 풍요로운 정서를 가진 경찰관들이 많다는 뜻이다. 삼산서의 경우 열 명 넘는 직원들이 문학회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걸로 알고 있다. 동인지라든가 책자의 발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메마른 환경이라 인식되어온 직장에서 지속적인 운동을 펴나가는 문학모임이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커져서 국민 친화적인 직장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경찰관 신분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시 낭송회를 연다면 청소년들에게 경찰관은 진정 선망의 대상으로 비춰질 것이다.
경찰관들로 구성된 그룹사운드 '프리벤처' 의 공연. 수도권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앞서 남부서의 관악기 동호회에 관해 지면을 할애했는바 앞으로 빅밴드를 결성하여 대외활동도 추진해볼 계획이다. 다행히 오랜 세월 드럼을 연주해온 동료 직원이 있어 마음을 합치면 금방이라도 가능하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은 검거하여 범죄로부터 국민을 안전히 보호하는 임무를 지고 있지만 문화생활을 매개로 국민에게 한 발짝 친화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면 경찰관에 대한 인식도 날로 새로워지리라 믿는다.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음악이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을 통해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훨씬 살 만해지리라. 지금 경찰 내부에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이 우리의 밝은 미래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경찰관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급진전되어 좀 더 새로운 모습으로 다양하게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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