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인 저도 일진회 피해자 였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섬마을에서 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도시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습니다.
시골 중학교에선 보지 못했던 학교 앞 분식점, 연필이며 공책이며 없는게 없는 문방구, 이런 모든 것들이제겐 새로운 설레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도시의 모습들이 저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온건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일진회 중에 일진이 있는 학교였습니다.
또래보다 뒤지지 않는 체격과 당당한 모습에 전 일진들의 눈엣가시 였을 것입니다.
하루는 매점에서 사온 빵을 교실에서 먹고 있는데 교실 뒤에서 애들과 장난을 치고 놀던 덩치 큰 친구가 다가와 제게 다짜고짜 뺨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저는 맞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항하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전 처음으로 '죽는게 이런거구나'하며 느꼈습니다. 어디선가 덩치 큰 친구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제 주위를 둘러싸고 저를 무참히 짓밟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종이 울려서야 폭행은 멈췄습니다.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피 범벅이 되었지만 누구하나 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피를 닦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니 한 없이 초라하고 작은 모습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저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도시에 있는 중학교 전학까지 왔는데 이렇게 이유없이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에 한 없이 서러운 눈물만 끊임없이 흘려야만 했습니다.
학교도 가기싫고 왜 전학을 왔는지 수십번 수백번 후회하고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다음날 전 용기를 내 그 친구에게 왜 나를 때렸냐고" 라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이없게도 본인에게 왜 허락도 없이 교실에서 빵을 먹어 때렸다고 얘기 했습니다.
어이가 없고 기가차서 말도 안나왔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 이곳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참을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학교 일진이었고 그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두려워 더이상 말을 꺼낼수 없었습니다.
죽고 싶도록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누구한테도 내 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지만, 이런 저를 보면 더 마음 아파하실 부모님 때문에 혼자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론 수시로 일진 친구들이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당할수는 없었습니다. 전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힘없이 당하지 말자, 당당히 이겨내자!"
또 오늘도 어김없이 일진들이 절 폭행했습니다. 10명이 넘는 친구들이 둘러싸고 저를 폭행했지만 전 죽을힘을 다해 참아냈습니다. 그 친구들이 때리다 쓰려질때 까지 맞고 또 맞았습니다.
그렇게 10분 넘게 맞다 보니 아픈것도 몰랐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저를 미친놈, 똘아이라며 누워있는 저에게 침을 뱉으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는 일진들이 저를 다시는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때 죽을 만큼 맞지 않았다면 일진들은 괴롭힘과 폭행을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뒤로 전 운동이란 운동은 모조리 했습니다. 친구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강한자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약한자 앞에선 강한사람, 강한사람 앞에선 약한사람. 그런 사람이 아닌 약한자 앞에선 한없이 약한사람, 강한자 앞에선 비굴하지 않는 강한사람.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학교폭력으로 아파하며 무너지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저도 똑같이 아프고 가슴이 찢어질듯 시려옵니다. 그 시절 저는 한 없이 약한 학교폭력 학생이었지만 지금 저는 국민을 위해 두려울게 하나도 없는 대한민국 경찰이 되었습니다.
- 학교폭력 피해자로 돌아가 진심으로...
왜 죽도록 괴롭힘을 당해도 친구들에게 부모님께 때론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깊게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또 다시 저같은 학교폭력이 나오지 않도록 경찰은 학생들의 아픔과 슬픔의 고민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학교폭력이 없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경찰은 하루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순경에서 청장까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모두 부모의 마음으로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밤낮없이 최선의 노력과 고민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아팠던 만큼 절대 우리 학생들이 아프지 않도록 내 자녀들 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지킬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십시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의 애타는 고민을 진정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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